문화평론가 진중권이 한겨레 허재현기자의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한 언급에 화살을 날렸다. 문제가 된 내용은 허재현의 트윗으로,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 교수의 주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재판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자신은 부러진 화살을 보고 그 재판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놀랐는데 나중에 재판기록을 확인하니 재판과정이 100%사실 묘사였기 때문에 한 번 더 놀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진중권의 비판은, ‘허재현기자는 영화의 주요내용이 형사재판의 기록내용과 일치한다면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한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다큐조차도 일종의 극영화로 봐야하기 때문이며 허재현기자는 의도적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이런 부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에는 양자 모두 매우 상당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레토릭들이 뒤섞여 있어서 겉보기에는 매우 논쟁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보면 대체 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조금 명확해질 것이다.
우선 나는 공판기록을 모두 확인하지 못했다. 4000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모두 확인할 시간도,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제작자와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 속의 재판 내용에서 사용된 대사는 실제 공판에 기록되었던 대사들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사법부에서는 지금처럼 영화의 파장을 의식해서 조잡한 대응매뉴얼을 만들었을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이나 사기죄와 같은 것으로 감독을 고발했으면 더 간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의 비판은 이 점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김명호 교수의 변호인을 맡았고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로 극화되기도 한 박훈 변호사는 진중권의 언급에 대응하여 관련 공판기록을 인터넷 상에 순차적으로 모두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허나 영화대본과 공판기록이 마치 복사본처럼 일치해도 진중권의 주장은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다.
진중권은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 자체, 그러니까 다큐멘터리와 같은 것도 극영화와 같은 것으로 봐야한다며 자신의 석궁을 장전했다. 예를 들어, 화제가 되었던 ‘남극의 눈물’과 같은 것 또한 남극의 현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으며, 혹은 ‘2차 세계대전의 전모’라는 식의 제목을 가진, 실제 인물과 전쟁 영상들만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실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분명히 타당하다. 그러나 그의 비판이 가진 철학적 성격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분석적으로 검토해보자. “모든 영상물은 특정한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는 하나의 인위적 프레임으로서 ‘사실’ 자체로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문자 기록물에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기록 매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 히틀러의 육성과 영상기록물과 속기록 등등을 모두 동원한 두 개의 영상물이 있다고 치자. 하나는 독일네오나치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고 하나는 미국자유주의연맹이 만든 것이다. 이 둘 모두는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자료(fact data)들만으로 가득한 것은 인정되겠지만, 나치주의자들의 영상물을 보고 ‘이것이 히틀러의 진실이었구나!’하면서 감동하거나 ‘역시 히틀러는 미치광이였구나!’하고 분개하는 양자의 태도는 모두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것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기행문학, 에세이, 심지어는 신문기사에도 적용된다. 적어도 오늘날의 수준에선, 조선일보와 한겨레 모두 ‘대체로’ 사실만을 바탕으로 보도한다. 그리고 양자는 전혀 다른 ‘사실’을 웅변한다(이걸 ‘프레임이 다르다’라고 전문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헌데 이런 입장으로 나아가면,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의 지위가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대체 ‘사실’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그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사실인가? 그것도 문제가 있다. 기록된 영상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각 또한 그가 서있는 위치, 각도, 시각, 편견, 상황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전두환이 기억하는 80년대는, 광주에서 죽은 오라비의 묘비 앞에 향을 피우는 여인네의 기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둘은 자신들의 눈으로 사실들을 본 사람들이다.
이러한 눈으로 ‘부러진 화살’을 보자. 그 재판 장면이 공판기록을 그대로 대본으로 사용하여 읽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사실’이 될 수 없다.
왜? 첫 번째로 공판기록에 기록된 A라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은 실제 재판 속에서 기록관이 들리는 말 그대로를 적은 기록이다. 재판장에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억양과 표정, 목소리를 통해 만들어 진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만큼의 진실성Reality를 ‘받아 적은 문장’이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 1차적으로 ‘사실’은 다소 ‘부족해’진다.
둘째로, 기록된 공판기록의 A라는 문장을 배우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따라, 이제 ‘부족한 사실’에는 ‘픽션’이 개입한다. 배우, 혹은 감독은 A라는 문장을 자신의 이해력과 배경지식, 편견, 판단력 등을 통원해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합당할 듯해 보이는 표정과 목소리와 뉘앙스와 억양으로 표현한다. 이 단계에서는 ‘부족한 사실’ 정도가 아니라, 사실에 해석과 과장과 왜곡과 가감이 들어간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연극이 된다.
셋째로,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은 어떤 카메라 앵글로 담는가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것이 좌우된다. 판사 역을 맡은 문성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대사만 들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유독 그가 악독하게 보이는 얼굴 옆선을 보여준 상태에서 대사를 하게 할 것인가? 이제 이 단계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장치예술의 단계까지 상승된다.
넷째로, 이 영상을 편집하고, 배경음악이나 음향효과를 조정하는 단계에서 이것은 이제 ‘영화’의 단계에 들어서고, ‘사실’은 거의 먼지조각만큼도 남지 않게 된다.
이토록 엄밀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맥락에서 ‘심지어 다큐조차도 일종의 극영화로 간주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극영화를 사실로 봐달라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요구죠.’라는 진중권의 주장이 작동한다. 그런데 여기서 진중권의 주장은 철학적 반실재론의 입장에 서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반실재론은 연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까지 나아가며, 이는 가장 엄밀한 회의주의를 내포하는데 진중권은 ‘fiction과 fact의 경계를 흐려가며 도덕과 사법의 회의주의를 조장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팩트’ 즉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입장임을 유추할 수 있다. 사실 그가 반실재론자였다면 안티조선운동의 창립멤버였다는 점은 상당한 아이러니일 것이다. 어차피 모든 시각이나 보도가 개인적 주관이고 편견일 뿐이라면 조선일보를 비판할 근거는 왜소해지기 때문이다.
작금의 논쟁에서 진중권이 뜻하는 ‘사실’이란, 최소한 PD수첩이나 현장취재르뽀와 같은, 실제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에 대한 녹취나 영상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상식적인 관점에서 인정되는 ‘사실’이고,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실재론적인 입장이라면 PD수첩의 스폰서검사보도 또한 주관적 독단에 불과하지만, 진중권은 그런 식의 반실재론을 웅변하는 것은 아니다. 자, 그렇다면 진중권의 말대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영화다. 물론 때때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 배역을 맡은 연예인에게 해코지를 하는 어르신들이나 정신병자들이 있기는 한데, 이 경우야말로 허구를 사실로 잘못 이해한 일반적인 상황이며, 진중권의 비판은 이러한 인식오류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준엄한 꾸짖음이 된다.
진중권의 날카롭고 합리적인 화살은 그렇다면 허재현에게 명중했는가? 허재현의 주장은 정확히 무엇이었나? 다시 보자. ‘(부러진 화살은)재판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재판기록을 토대로 영화가 재판과정을 100% 사실 묘사하고 있으며,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면)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한다.’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부러진 화살’의 영상이 ‘PD수첩’이나 ‘소비자고발’과 같이 실제 영상을 촬영한 것이라는 뜻이었나? 그것은 결코 아니다. ‘100% 사실 묘사’는 ‘100%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100%라는 말에 의심스런 강조가 있지만, 뒤에 ‘묘사’임을 명시했다. 진중권은 아마 100%라는 말이 맘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75% 사실기록’ 혹은 ‘사실 묘사’라는 표현을 했어야 흡족했을 것인가?
허재현은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상물이 실제촬영영상기록물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재판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라는 문장은 무리하게 곡해하지 않는 한, 그냥 평범한 설명일 뿐이다. 이것이 거짓이 되려면 아마도 ‘김명호교수재판’이라는 사실과 그 기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이 ‘부러진 화살’의 영상 속 묘사와는 일치점이 전혀 없는 다른 사건이어야 할 것이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 달라.’는 말은 어떤가? 허재현은 이것이 사실의 ‘영화화’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화’라는 단어는 그 의미에 기본적으로 각색과 재구성을 통한 영상화를 내포한다. 물론 허재현은 이것을 픽션과 대비되는 어떤 것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논픽셕’의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부러진 화살’을 엄밀히 논픽션 장르로 분류하는 것에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대체적으로 논픽션이라고 하는데, 현장르뽀와 같은 것도 강한 의미의 논픽션이라고 하기 때문에 ‘논픽션’의 의미를 매우 엄밀하게 적용하면 ‘부러진 화살’은 약한 의미의 논픽션이 될 것이다.
이런 지루한 논증이 불필요할 정도로 명료한 사실은, 허재현이 ‘부러진 화살’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되는 영상물이 현장취재영상과 같은 ‘사실’을 담고 있다고 의미했다고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허재현은 이것을 “만들어진 영화”, “묘사”, “영화화”와 같은 단어를 분명히 사용하고 있기에, 그는 허구를 진실로 착각하는 정신착란을 선동한 것이 아니다.
진중권의 석궁은 앞서 말했듯 그러한 정신착란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리고 보았듯 허재현은 그런 착각을 저지르지 않았고, 따라서 진중권이 쏜 화살은 빗맞아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진중권의 의도가 그런 단순한 착각을 정조준 한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렇게 믿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며, 내가 보기에 물론 진중권이 그렇게까지 순진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인 언급에 불과한 것을 굳이 빗나간 논리로 잠식시키려 드는 그의 의지는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고, 그 의지는 별로 떳떳한 게 아닐 것 -이 표현들은 모두 진중권이 허재현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표현들을 응용한 것이며, 나는 이 표현들이 진중권을 비판하는데 있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고 생각된다-이다.’
결론 내리자. 진중권의 주장을 엄밀히 검토했을 때, ‘사실은 존재할 수 없다’는 반실재론적 입장과 ‘드라마·영화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두 종류의 해석이 가능한데, 전자로 이해하면 그의 다른 주장들과 심각한 모순이 생겨 일관된 주장으로 성립될 수가 없으며, 후자로 이해하면 그것은 허재현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그가 늘어놓은 문장만으로는 도대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진중권이 허재현에게 그리하였듯, 우리는 행간과 맥락을 짚어보는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진중권은 허재현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했다. ‘100% 사실묘사’라는 언급은 다소의 과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허재현의 주장은 아무리 악의적으로 해석해도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썩 어울리진 않는다. 진중권이 보기에 ‘떳떳하지 못한 의지와 부당한 방법을 통한 정권교체의 의도’가 이러한 문장에 담겨있다고 한다면, 나는 역설적으로 곰곰이 따져보았을때 누가 봐도 맥락을 잃고 둥둥 떠 있는 그의 주장 속 의도는 대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사람들이 ‘부러진 화살’을 실제로 오인하여 사법부에 대한 광범위한 증오와 광기로 분개할 것을 진중권은 우려할 것이다. 나도 그것이 염려되며, 충분히 동감한다. 그러나 허재현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나쁜 의미에서 그렇다. 사리가 맞지 않는 말로 부당하게 비판을 하고 있으며 행간에서 자의적인 의미를 찾아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진중권은 자기 의도의 순수성도 항변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번에는 논리적인 면마저도 취약하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진중권은 사람들이 허재현의 트윗을 보고 ‘와, 이 영화가 PD수첩같은 실제 영상이구나’라고 착각하고 흥분할까봐 불안해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재현의 문장에서 도출되기 힘든 결론이기에, 그렇게 읽는 이들의 착각을 지적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진중권은 대중의 착각과 무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기에, 아마도 그런 착각을 경계하기 위해 허재현을 희생물로 삼아 장렬히 석궁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착각하고, 글을 읽으며 난독으로 왜곡하는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힐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안개를 걷어내고 곰곰이 본다면, 누구라도 그가 쏜 화살이 ‘부러진 화살’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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